요즘 학원도 잘 다니고 좋은 옷과 비싼 스마트기기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외로워 보일까, 하는 생각을 수업 중에 종종 합니다. 저는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상담을 병행하고 있는데, 관심을 조금만 줘도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물질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그게 바로 정서적 돌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주양육자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맺는 관계가 주양육자(primary caregiver)입니다. 여기서 주양육자란 부모뿐만 아니라 할머니, 이모,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아이의 초기 성장에서 일관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을 모두 포함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주양육자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자기 성격이나 감정 상태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따뜻한 양육자는 아이에게 따뜻함을 전달하고, 감정적으로 차가운 양육자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아이에게 거리감을 줍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아본 것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들을 키우면서 이 부분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팔이 아파서 안아주지 못할 때 그냥 넘어가지 않고 "엄마 오늘 팔이 아파서 네를 안아주기 어려워"라고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이유에서 입니다. 제 상태를 아이에게 숨기는 것보다, 감정을 언어로 나누는 경험 자체가 아이에게 관계의 틀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대상관계 이론이란 사람이 초기에 맺은 중요한 관계의 패턴이 이후 모든 대인관계의 기본 틀로 작동한다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주양육자와의 관계가 곧 세상과의 관계 방식을 결정짓는 출발점이 된다는 뜻입니다.
애착형성이 흔들리면 생기는 일
애착형성(attachment formation)이란 아이가 주양육자와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과정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면 아이는 낯선 상황에서도 도전하고 돌아올 수 있는 심리적 안전기지를 갖게 됩니다. 반대로 이 과정이 불안정하거나 단절되면 아이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방식 자체가 흔들립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유독 선생님의 시선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수업보다 "저 잘하고 있죠?"를 더 자주 묻는 아이들입니다. 처음엔 그냥 칭찬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담을 하다 보면 집에서 그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건 제 경험상 이 패턴이 꽤 일관되게 반복됩니다.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아동 중 정서적 방임을 경험한 비율이 신체적 학대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정서적 방임이란 아이의 감정적 필요를 지속적으로 무시하거나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리적으로는 곁에 있어도 감정적으로 부재한 경우가 해당됩니다.
안정 애착을 갖지 못한 아이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신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과도한 인정 욕구: 끊임없이 칭찬과 확인을 요구하는 행동
- 회피형 반응: 감정 표현을 차단하고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
- 불안 애착: 분리 상황에서 극도로 예민해지거나 집착하는 모습
- 관계 반복 패턴: 성인이 된 후에도 불안정한 대인관계가 반복됨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와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것도 이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감정을 나누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사춘기가 되어서 갑자기 "네 마음을 이야기해 봐"라고 해도 아이 입장에서는 그게 오히려 낯설고 부담스러운 일이 됩니다. 저는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제 감정도 솔직하게 전달하고, 아이의 감정도 말로 확인하는 걸 습관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정서발달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
정서발달(emotional development)이란 아이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입니다. 이 능력은 단순히 공감 능력에 그치지 않고,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과 직접 연결됩니다.
일부에서는 아이에게 규칙과 훈육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규칙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규칙이 효과를 내려면 먼저 관계가 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의 규칙은 그냥 강제에 가깝습니다.
한국아동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를 형성한 아동일수록 또래 관계에서도 친사회적 행동이 높게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어린 시절 주양육자와의 관계 방식이 이후 사회적 관계의 패턴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결과입니다.
한 가지 오해가 있는데, 어린 시절의 애착 경험이 성격을 완전히 결정한다는 결정론적 시각입니다. 이를 두고 "어릴 때 잘못되면 끝"이라고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첫 번째 애착이 생겼다는 것은 두 번째 애착도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선생님, 멘토,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틀이 보완될 수 있습니다. 제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반응하려고 신경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은 정서발달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 수준에 맞는 감정 언어 사용: "엄마가 오늘 이런 일이 있어서 기분이 별로야"처럼 구체적으로 표현
- 아이의 감정 반응 무시하지 않기: "별것도 아닌데"가 아니라 "그랬구나, 속상했겠다"로 받아주기
- 실패에 대한 긍정적 언어 사용: "틀렸어"가 아니라 "다시 한번 해볼까?" 같은 도전 촉진형 표현
이런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세상이 안전하다는 신호로 작동합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걸 의식적으로 하는 게 어색했는데,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닌데 정서적으로 허기진 모습을 보일 때마다, 결국 시간과 온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양육이 완벽한 부모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실수해도 솔직하게 말하고, 아이의 감정에 반응하는 것, 그 작은 반복이 쌓여서 아이 마음에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지금 당장 모든 걸 바꾸기 어렵더라도, 오늘 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 한 번이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