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의 헤어짐은 아이에게 하나의 ‘사건’으로 남기보다, 말로 설명되지 않은 공백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부모 둘 중 한 명과 너무 이른 시기에 떨어지게 된 경우, 아이는 그 부모의 얼굴이나 목소리, 함께한 기억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마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나 슬픔이 자리 잡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아이 스스로도 이 감정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가끔 마음이 이상해”, “기억도 안 나는데 보고 싶은 것 같아”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때 어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감정을 바로 설명하거나 정리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의 감정은 논리보다 먼저 존재하며, 이해보다 인정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 관계가 아닙니다. “언제 헤어졌는지”, “왜 함께 살지 않게 되었는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기준입니다. 어른이 이렇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기억이 없어도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어. 그건 이상한 게 아니야.”
이 한 문장은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전한 기준을 만들어 줍니다.
아이들은 종종 스스로를 혼란스러워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는데 왜 이런 감정이 들까?”, “이렇게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같은 질문이 마음속에서 반복됩니다. 이때 어른이 감정을 없애려 하거나 빠르게 정리하려 하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게 됩니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더 궁금해질 수도 있고,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질 수도 있어.”
이 말은 아이가 자신의 혼란을 그대로 느껴도 괜찮다는 허락이 됩니다.
어른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감정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괜찮아”, “생각하지 마”, “지금 잘 지내고 있잖아” 같은 말은 선의에서 나오지만, 아이에게는 ‘이 감정은 오래 가지면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아이의 감정은 사라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 잠시 머물러도 되는 상태입니다.
아이에게 건네는 말은 길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짧고 반복 가능한 문장이 아이의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네가 느끼는 감정은 네 잘못이 아니야.”
- “슬플 때는 슬퍼해도 괜찮아.”
- “말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이야기해도 돼.”
이 문장들은 아이에게 감정을 설명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또 하나 중요한 기준은, 기억의 빈자리를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아이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라고 물을 때,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수 있어. 크면서 천천히 이야기해 줄게.”
라는 말은 아이의 시간과 성장을 존중하는 방식이 됩니다. 아이는 지금 당장의 완벽한 답보다, 나중에 다시 물어볼 수 있다는 신뢰를 더 필요로 합니다.
어른이 주의해야 할 또 다른 점은 아이의 감정을 현재의 관계와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게 부족해?”라는 말은 아이의 마음을 닫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과거의 공백과 현재의 사랑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존재합니다. 하나가 있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를 떠올릴 때 슬퍼해도 괜찮고, 아무렇지 않은 날이 있어도 괜찮으며, 어느 날 갑자기 궁금해져도 괜찮다는 기준을 어른이 먼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은 결국 이런 메시지입니다.
“너의 마음은 여기에서 안전해도 돼.”
어릴 때의 헤어짐은 아이가 선택한 일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생긴 감정 또한 아이의 책임이 아닙니다.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감정을 없애주거나 바꿔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안전하게 둘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부정되지 않는 경험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감정을 정리할 힘을 키워 갑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말은 거창한 위로나 해답이 아닙니다.
“괜찮아”보다
“그렇게 느껴도 돼”라는 말.
그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에 오래 남아, 앞으로 자신의 감정을 지키는 기준이 되어 줍니다.